아침이 밝았고, 오늘도 포근한 햇살이 내 창문을 비춘다.
바깥은 차가운 겨울이었지만,
아침부터 지저귀는 새들과 따뜻한 햇살이 조화를 이루는 아침이었다.
또 이렇게 여느 때처럼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.
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백수가 된 날이었다.
난 아침 햇살과 거리 속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가,
오늘 하루 시작이 도저히 자신 없어서 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. 그리고 생각한다.
학창 시절을 돌아보면,
나는 집 학교 학원 그리고 결국 집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살았다.
부모님이 골라주는 대학교에 입학했고, 그저 시간이 흘러서 졸업했다.
이제는 기억도 가물해진 시절을 지나오면서도
'난 이제 뭐 하고 살지'라는 질문은 아직도 꽤 기억에 또렷하다.
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하다.
오늘만큼은 나에게 너무 지긋지긋한 ‘난 이제 뭐 하고 살지’ 숙제를 미뤄두고,
대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2의 인생을 계획한다.
좀 더 미쳐서 그동안 제일 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인 외국생활에 직접 뛰어들기로 한다.
온전히 홀로서.
그래서 제일 먼저 세계지도를 펴 놓고, ‘그럼 어디로 가지?’
내 여행경험을 바탕으로, 선택해 보건대, 뉴욕이 단연 탑이다.
뉴욕은 다양한 인종이 더불어 살아가지만
사람들의 성향은 서울사람들과 꽤 비슷하다.
그리고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도시이기 때문에,
되려 공평한 사회 속에 살아간다.
그래서 외국인들에게는 차라리 적응하기 쉬운 도시 같다.
초등학교 시절 뉴욕 도시 분위기에 압도되어,
'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!'라고 생각하는 부류 중 하나가 나였다.
그러나 안타깝게도, 미국은 최대 3개월 동안 체류가 가능하다.
이왕이면 비자 걱정 없이 좀 더 오래 지내며 경험할 수 있는 도시를 찾기로 한다.
그리고 홀로 여행이기 때문에 영어권 국가이면 좋겠다.
그렇게 나는 런던을 고민해 본다.
런던은 자꾸 기회가 생겨서 가장 여행을 많이 한 도시이다.
개인적으로 대부분의 사랑과 감사함은 런던에서 받은 것 같다.
아직 런던에서 해보지 못한 나의 작은 꿈들이 늘 가슴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.
영국식 다과를 먹어보고,
늘 스쳐 지났던 런던 아이를 직접 타 보고, 뮤지컬을 관람해 보는 것.
이 낭만을 이번에야말로 하나씩 실천해 보리라.
미국으로 가는 꿈은 더 이상 나의 내 일이 아니었고,
나의 마음은 어느새 런던을 향해 힘껏 손짓하고 있었다.
우선 런던으로 정하고, 그럼 가자.
내 나이 30살이 넘어가면서 머리가 큰 만큼 용기는 작아져서일까.
비행기표만 한 장 들고 갈 낭만은 없어서,
돈도 좀 챙겨 가보기로 한다.
월세, 생활비, 식비, 보험료, 각종 품위유지비를 다 고려했을 때
매달 얼마의 지출이 예상될까.
매일 두 시간 이상 관련 유튜브로 런던에 사는 랜선 선배님들의 조언과 정보를 메모해 둔다.
월 400만 원 정도면 백수 신분으로 이것저것 배우면서 생활 가능할까.
'겁은 많은데 부지런하진 못해서, 돈이 더 들지도 몰라.
겁쟁이 울보인 내가 타지생활 가능할까.
뼛속같이 한국인 피가 흐르는 내가, 아빠 엄마가 전부인 내가… 할 수 있을까.
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모습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.
그렇다면, 돌아왔을 때 나를 위한 보상은 뭘까.
나의 결정에 충분히 서포트해 주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은 없었다.
"그래 미래는 보이지만, 너 인생 네가 선택하는 거지 뭐.
대신 왔을 때 뭔가 큰 걸 이뤄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.
넌 놀러 가는 거야."라는 뭔가 탐탁지 않은 반응들.
그리고 돌아왔을 때에는,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겠지.
“왜 갔어? 가서는 뭐 했어? 뭘 배웠지? 뭘 배우기엔 짧은 시간 아닌가?”
수많은 질문에 아직 모두 대답을 못했다.
사실 질문 중 당장 대답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.
그래도 좋다. 나 지금 꽤 행복하거든.
한 가지 소망하는 건, 부디 돌아왔을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난 딱 지금 자리이기를.
비행기표를 끊었고, 우선 한 달간 거주할 적당한 곳을 찾았다.
가서 잃을 게 많을지, 얻을 것이 있을지, 미래는 모르겠지만 그냥 난 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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